안상홍 재림 예수님? 2천 년 전 초림 예수님과 비교해 보자

안상홍 재림 예수님? 이 말을 들은 주변인들의 반응들은 어떨까? 기성 교단들은 말할 것도 없이 펄쩍 뛸 것이고 종교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이들도 이상한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느 모로 봐도 그리스도로 보일 법한 비범함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3분의 1이 오늘날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당시 어떤 대우를 받으셨을까?

안상홍 초림 예수님 비교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림 예수님께서도 온갖 무시와 비방은 다 당하셨다. 지금이야 온갖 성화들로 거룩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그런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면 예수님께서 그런 수모를 당하실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어떤 요소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걸림이 되었을까?

출신 성분과 지역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태복음 13:55~57

‘목수’라는 표현은 굉장히 고상하게 번역된 것이며 헬라 원어에서는 ‘텍톤(τεκτων)’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목수뿐 아니라 미장이 혹은 건설 수공업자 등을 총칭하는 단어다.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노가다꾼’이라는 뜻이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통상적 이미지의 그 노가다꾼이 천국 복음을 전한다며 다가온다면 쉽사리 믿음이 생기겠는가? 게다가 당신이 그 노가다꾼의 부모님과 형제들까지 잘 아는 사이라면 더욱 그 말이 우습게 들리지 않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요셉과 예수님, 안상홍 재림 예수님
목공을 하는 요셉과 어린 예수님. 실제 모습은 이것보다 훨씬 초라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자라신 점도 비방의 요소였다(요한복음 7:52). ‘이방의 갈릴리’라는 이명에 걸맞게 이 도시는 헬라 등 이방 문명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이방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유대인들의 특성상 갈릴리는 어쩌면 ‘불결한 도시’였을 것이다. 천한 직업도 모자라 차별 받는 지역 출신이라는 점까지. 예수님 앞에 버티고 선 편견의 장벽이 벌써부터 높게만 느껴진다.

배우지 아니하였거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학벌 문제까지 지적했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요한복음 7:15

요즘 표현으로 저렴하게 풀이하자면 ‘어쭈, 성경 좀 아네?’ 정도의 뉘앙스다. 근본적인 측면을 고려해볼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좀 못 배우시면 어떤가? 세상의 모든 학문을 창조하신 분에게 배움이 짧다며 비판하는 것은 난센스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반적 기준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봤을 때 어떤 오류가 생기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형제들도 믿지 않음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라면 적어도 가족들은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 역시 2천 년 전 비방자들의 단골 레퍼토리였다(마가복음 3:20~21, 요한복음 7:3~5). 하지만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시는 이상 가족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신가? 가족들의 믿음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이후 초대교회의 선지자가 되어 ‘야고보서’의 저자가 되었다. 그런 주장을 했던 자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이켰을까? 십중팔구 다른 핑계를 찾았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 부분이 만족된다 해도 다른 비방 요소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믿었던 자들은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었던 자들은 그 생각과 말이 남달랐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8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이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실 표현이 있을까? 사람으로 오신 것, 천대받는 동네에서 자라신 것, 배우지 못하신 것, ‘텍톤’이셨던 것, 가족들이 믿지 않는 것…. 그런 요소들은 베드로와 바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두 사도는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넘치도록 받고 있다.

안상홍 재림 예수님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믿는다. 믿지 않으려 하면 믿지 못할 요소만 보이기 마련이지만 성경의 모든 증거들은 안상홍님을 재림 예수님으로 가리킨다. 다윗의 왕위를 가지고 오실 것이라는 예언, 멜기세덱의 반차에 대한 예언, 무화과나무의 비유 등등….

마음을 열고 성경의 말씀을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재림 예수님이신 안상홍님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도 마음속 의심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안상홍, 그는 하나님인가 사람인가’라는 포스트를 권하며 글을 마친다. 부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큰 복 받은 사람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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