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 침례? 왜 세례를 주지 않는가

하나님의 교회 침례 교리에 대해서 들으면 꼭 한 번쯤은 되묻는다. “아, 그러니까 그게 세례죠?” 하지만 곧바로 정정해준다. “세례가 아니라 침례입니다.” 자주 들어봤던 ‘세례’라는 명칭이 아니라 분명 침례다. 세례와 침례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세례와 침례의 차이

먼저 보편적으로 쓰이는 표현인 세례의 경우 ‘씻을 세’자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물을 통해 죄를 씻는 의식이다. 세례는 절차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물을 뿌리는 살수례(the baptism by sprinkle)와 머리에 물을 붓거나 떨어뜨리는 관수례(baptism by effusion) 그리고 온 몸을 물에 잠그는 침수례(the baptism by immersion)가 있다. 이 침수례를 줄여서 침례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세례의 범주 안에 침례가 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어원을 살펴보면 또 사정이 달라진다. 침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밥티스마(βαπτισμα)’인데 이는 ‘잠기다, 적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씻다’에서 그치지 않고 ‘잠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만큼 세례보다는 침례가 원어의 성격을 잘 살린 번역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교회 침례, 세례와침례의차이
침례(the baptism by immersion, βαπτισμα)를 받으시는 예수님

침례가 세례가 된 과정

초대교회 당시에는 침례를 비롯해 살수례와 관수례 즉 세례의 의식들도 함께 이루어졌다. 다만 의식이 거행되는 조건에서 다소간의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은 몸을 다 잠그는 방식을 차용했지만 중동지방의 특성상 몸을 다 잠글 만큼의 물이 없는 경우도 존재했는데, 이때 사용한 의식들이 바로 세례였다.

다시 말하자면 세례의 범주에 침례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침례가 정식 절차며 세례는 약식이었다는 이야기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행해지던 약식 절차인 세례는 A.D. 120년경부터 물이 충분한 곳에서도 행해지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세례 vs 침례

사실 세례도 침례의 한 형태 중 하나였으니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으나, 오늘날에는 이 세례조차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 교회에는 ‘학습’이라는 절차가 있는데 신앙을 갖고자 하는 이가 6개월이나 1년 정도 후에 세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학습’ 과정을 거친 후 세례(침례) 의식을 행한 기록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전도를 받은 이가 침례를 원하기만 한다면 상황과 여건을 가리지 않았다.

침례는 즉시

침례는즉시

전도자 빌립과 내시는 생전 처음 보는 사이였고, 이 내시는 에티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인물로서 오늘날로 단순 비교해보자면 기획재정부장관 혹은 경제부총리에 해당한다. 분명 더 나은 여건을 위해 침례를 미룰 수 있었지만 길가에서 물을 발견한 두 사람은 침례를 미루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식일에 …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 저와 그 집이 다 세례(침례)를 받고

사도행전 16:13~15

안식일은 창조주의 권능을 기념하는 거룩한 날이다. 모세 당시에는 안식일의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돌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민수기 15:32~36). 이는 그 어떤 사정도 안식일보다 앞설 수 없음을 보여주신 단적인 예다. 그러나 안식일이라 해도 침례만큼은 미루지 않고 즉시 집전되었다.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침례)를 받은 후

사도행전 16:31~33

오늘날의 밤과 달리 2천 년 전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밤길을 손전등에만 의존하여 걸어본 이라면 위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 분간도 어려운 마당에 침례를 어찌 받냐며 미루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겠지만, 본 상황에서 간수는 죄수들의 탈옥을 막지 못한 입장이므로 다음날의 생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비단 간수의 경우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 채 1분 1초를 보낸다. 진리를 영접하는 데는 길가에서든, 안식일에든, 밤중에든 예외가 없는 것이다.

재침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교를 믿는 만큼 살면서 이미 침례를 받아본 이들도 많다. 이렇게 행해진 모든 침례에 구원의 약속이 있을까? 물론 침례는 일생에 한 번이지만 하필 그 침례에 구원의 약속이 없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침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성부·성자·성령 세 시대로 나누시고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역사하셨다. 오늘날이 성령시대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교단이 동의한다. 하지만 침례만큼은 성자시대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 즉 성령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못했다면 침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성자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

하나님의 교회 침례 – 성경에 입각한 규례

하나님의 교회 침례, 그 예식은 성경대로 온 몸을 적심으로 일생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장례 지내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성경적 의식이다. 약식으로, 구원자의 이름 없이 행해지는 의식은 구원의 표가 될 수 없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망설임 없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구원의 표인 침례를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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